명차

[스크랩] 포르쉐 박스터, 박스터 S

최창호 2009. 5. 14. 12:53

 

 

 

세계지도를 꺼내 이탈리아 시실리 섬을 찾아보자. 지도 속 이탈리아가 부츠 모양처럼 생겼다면, 시실리는 구두 코 바로 앞쪽에 바짝 붙어 있는 작은 섬이다. 지중해 연안에 자리하고 있는 시실리는, 따뜻한 기후와 빼어난 경치 덕에 최고의 관광지와 신혼여행 장소로 꼽힐 만하다. 물론 마피아로 더 유명하기는 하지만, 이번 출장 내내 마피아는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만약 나중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여행 관련 책을 쓴다면 꼭 넣어야 할 곳으로 ‘찜’ 해놓겠다. 그리고 시실리는 빼어난 경치 못지않게 유명한 얘깃거리 하나를 늘 달고 다닌다. 바로 이곳에서 열렸던 ‘타르가 플로리오(The Targa Florio)’라는 자동차 경주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탈리아 본토에는 자동차가 급속도로 보급되었지만, 당시 시실리는 낙후된 섬으로 중세 분위기 그대로였다. 1883년 시실리 팔레르모의 거부 플로리오 집안에서 태어난 빈센초 플로리오는 유럽 대륙 여행을 통해 자동차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지인은 자동차 경주 개최를 권유했고, 그렇지 않아도 어릴 적부터 자동차 경주에 흠뻑 젖어있던 빈센초는 시실리에서의 자동차 경주를 열기에 이른다. 자동차 경주가 열리기 전, 그는 보석 세공사에게 ‘타르가 플로리오’를 주문했다(targa는 이탈리아어로 접시라는 뜻-편집자주). 우승자에게 플로리오 가문의 접시를 주기 위해서다. 1906년 타르가 플로리오의 첫 번째 경주를 시작으로 제1,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몇 번을 빼고는 1977년까지 경기는 열렸다. 포르쉐가 이곳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1956년 이탈리아 레이서 움베르토 마글리올리가 포르쉐 550 A 스파이더로 우승을 한 이래 1973까지 11차례나 우승을 거둬 타르가 플로리오의 전설이 되었다.

 


사실 자동차 경쟁은 속도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최첨단 안정장비가 들어가면서 자동차가 점점 로봇이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첨단 장비들 역시 속도를 더 내기 위해, 혹은 빠른 속도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속도의 우월성을 공공연하게 자랑하기 위해 타르가 플로리오와 같은 모터스포츠가 활용된다. 바로 이곳 시실리에서 포르쉐 미디어 시승회가 열렸다. 시실리는 바로 포르쉐의 전설이 움텄던 곳인데다 특히 박스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550 스파이터가 우승을 거뒀던 곳이라 포르쉐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승차는 신형 박스터 S. 1996년 데뷔한 박스터는 스포츠카의 일반화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하지만 포르쉐와 대중적인 스포츠카 이미지는 쉽게 접목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카이엔이 처음 나왔을 때 포르쉐 마니아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듯, 박스터 역시 힐난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포르쉐, 아니 박스터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비데킹 회장의 예측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1990년대 초, 홀연히 등장한 박스터는 거의 그로기 상태까지 몰렸던 포르쉐에 희망을 안겨주었다. 박스터를 기점으로 해서 포르쉐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2007년 박스터 누계생산 20만 대를 기록할 정도로 포르쉐에게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번에 한 단계 진화된 모습을 드러냈다.

 


타르가 플로리오의 서킷은 시실리의 도시화로 인해 대부분 흔적도 없이 바뀌었지만, 시승코스만은 예전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박스터의 맛을 느끼기에는 천혜의 장소다. 박스터 S 엔진은 최고출력 310마력에 최대토크 36.7kg·m를 내는 직분사 방식의 수평대향 6기통의 3.4리터 유닛. 수치만 본다면 스포츠카라고 불리는 다른 모델들과 별 차이는 없다. 오히려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이 없을 정도. 하지만 박스터만의 최대 무기가 있다. 바로 시트 뒤쪽과 리어 액슬 사이에 들어앉은 미드십 엔진. 그게 왜 무기냐고? 미드십 엔진의 밸런스, 특히 박스터의 밸런스가 얼마나 완벽한지를 모르고 하는 얘기다.


트랜스미션은 6단 수동기어가 이전의 5단을 대체한다. 그리고 포르쉐가 자랑하는 7단 PDK. 모두들 알다시피 PDK는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포르쉐가 갈고 닦은 최고의 장비다. 포르쉐가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하는 점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조급해 하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라.

 


우선 수수께끼부터 하나 내야 할 것 같다. 때리면 때릴수록 쌩쌩하게 살아나는 게 무엇인지 아는가? 정답은 팽이다. 얼음판 위에서 팽이놀이를 해본적이 있을 게다. 어렸을 적이나, 나이 든 지금이나 참 보면 볼수록 신기한 게 팽이다. 옆으로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노끈이나 닥나무 껍질을 붙인 나무 채로 계속 때려주어야 한다. 맞으면 맞을수록 팽이는 가운데 박힌 징을 축으로 해서 곧게 서있다. 나무 채에 맞는 순간은 옆으로 잠깐 기우뚱하지만 다시 중심을 잡으며 빙글빙글 돌아간다. 팽이의 생명은 중심잡기에 있다.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좌우 밸런스가 맞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중심이 잡히지 않는 순간, 생명을 다하는 것이다.

 


박스터 S가 그렇다. 지중해의 따뜻한 바람과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 지 모를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를 벗삼아 유유자적 박스터 S를 몰기를 잠시. 그야말로 기가 막힌 드라이빙 코스가 등장한다. 오르막 헤어핀 코스의 연속이다. 굽이가 심한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엄청난 헤어핀 코스다. 지금부터 팽이의 전설이 시작된다. 스티어링은 즉각적이다. 어느 순간에도 스티어링과 차체는 같이 움직인다. 그리고, 박스터 S는 어떤 순간에 직면해도 중심을 놓지 않는다. 뒤쪽이 살짝 미끄러지는 순간조차, 중심을 잡은 채 미끄러진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코너에서 속도를 아무리 높여도 ‘박스터 S’라는 본연의 역할을 잊지 않는다. 속도가 붙든, 그렇지 않든, 그에게는 중심을 지키고 차선을 유지하라는 지상최대의 명령이 떨어진 듯하다. 어떤 순간에도 그 명령은 박스터 S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그리고 PDK도 한 몫 단단히 한다.


PDK는 빠르다. 그리고 부드럽다. 엔진회전의 주춤거림이 없다. 미리 다음 기어를 예상하고 있으며, 한 단계 낮은 기어를 끊임없이 찾는다. 물고 물리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지만 PDK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 버벅거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특히 감속기어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급코너에서 기어를 내리더라도, 속도는 줄어드는데 엔진의 느낌은 그대로 살아있다는 얘기다.

 


왜 미드십 엔진을 운전하는 게 제일 재미있고 가장 안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왜 스포츠카에 입문한 사람들을 위한 모델이 미드십이고 그 중심에 박스터가 있는지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 직진주행 역시 나무랄 데 없다. 박스터 S의 0→시속 100km 가속에 걸리는 시간은 5.2초. 0→시속 200km는 18.2초에 끊는다. 최고시속은 272km. 대부분의 스포츠카가 그렇듯 저회전 때부터 터지기 시작하는 토크는 시원스러움을 배가 시킨다. 액셀 페달을 밟으면 직분사 엔진은 즉각적 반응을 보여준다. 높은 영역으로 올라가도 그 맛은 줄지 않는다. 뚜껑을 시원스럽게 열어 젖히고 시속 240km로 달려본 적이 있는가?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라. 박스터는 911에 비하면 어린애 수준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달려보지 않았다면 그런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자동차를 선택할 때는 물론 돈과 맞물린 브랜드 네임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이를 뺀다면 첫 번째 기준은 디자인이고 두 번째는 시동을 건 뒤에 차에서 나오는 사운드가 아닐까 싶다. 박스터 S의 세련된 엔진 및 배기사운드에 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직렬 6기통이나 V6와는 또 다른 맛이 수평대향 6기통일 것이다. 스트레스 치솟는 찢어지는 소리가 아니다. 카랑카랑하지만 은은하다. 드라이버의 귀를 자극하고, 가슴을 때린다. ‘좀더 밟으라고, 좀더 꺾으라고.’ 이 소리를 듣는 드라이버의 운전은 더욱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청각적 즐거움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시각적 즐거움은 포르쉐의 고집에 져야 할 것 같다.

 


기본 보디 형태는 그대로다. 세부적인 부분에서 약간의 변화가 감지된다. 어쩌면 포르쉐 디자인 입장에서는 이런 정도가 큰 변화인지도 모른다. 카레라 GT를 본 뜬 헤드램프와 범퍼의 LED 안개등 및 에어 인테이크 디자인이 더욱 세련되어졌다. 테일램프 및 브레이크등에 LED 기술이 접목됐다. 포르쉐 디자인에서 획기적이라는 말은 당분간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변화는 디자인이 아닌 움직임을 위한 진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화는 끝이 없다.


세상에 완벽한 차는 없다. 완벽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그 선두가 바로 포르쉐다. 포르쉐는 오늘날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가운데 여전히 개선이 진행되고 있는 드문 차이기 때문이다.



 



출처 : 포르쉐 박스터, 박스터 S
글쓴이 : 톱기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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