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사과`의 기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 거리는 얼마나 가까우면서도 먼지,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서로 얼마나 비슷하면서도 다른지...
살다보면 누구나 사람 사이의 부딪침을 경험한다.
의견 차이, 오해, 한 쪽의 실수나 잘못... 어떤 이유로든, 누구나 상대를 아프고 힘들게 할 수 있고, 사과를 해야 할 일이 생기고 만다.
관계 상의 문제가 생겼을 때, 어느 한 편에서 100%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보통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거나, 잘못이 더 크거나, 또는 사회적으로 약자인 입장에서 관계 개선을 위해 사과를 시도하게 된다.
사과를 하는 것은 사실 어렵고 하기 싫고 힘든 일이다. 묻어두었던 나의 잘못이나 단점을 직시해야 하고, 상대의 토라진 마음도 다독여야 하고, 관계 회복을 위해서 아쉬운 소리까지 해야 한다.
그래도 기왕 사과를 하기로 결심하고 힘들게 입을 뗐다면, 사과를 '잘' 해야 한다. 스스로의 마음 정리가 잘 안 된 채, 상황에 떠밀려서 가식적으로 하는 사과는, 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고역일 뿐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과를 '잘' 할 수 있을까.
늘 지지고 볶는 인간 관계의 이야기들을 들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사과의 기술]을 7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1. 곧바로 사과부터 시작하라.
"사실, 난 니가 그런 입장인 줄 몰랐거든. 그래서 다른 일에 신경 쓰다보니, 네가 화가 나는 상황이 되었네... 미안해."
이거, 안 된다. 첫 마디를 떼면서부터 자신의 입장을 토로하고 합리화하기에 바쁘다. 현재 상대는 화가 나 있고 나의 행동으로 상처를 입은 상태. 즉, 첫 마디는 무조건 '미안하다' 또는 '잘못했다'는 내용의 사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론 나의 진실을 밝히고 악의가 없었음을 알려 상대의 마음을 풀려는 욕심은 이해한다. 그러나 저런 식의 서두는 상대에게는 "비겁한 변명"으로 들릴 뿐임을 명심하라.
[모범사과] "네가 화가 많이 났단 이야기를 들었어. 정말 미안해. 마음이 많이 아팠겠다.
난 네가 그런 입장이라는 것까지 생각을 못 했었어. 악의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널 힘들게 했구나."
2.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며,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사과하라.
"무조건 내가 다 잘못했어. 앞으로 내가 다 잘할께."
'무조건 다 내 탓이오', 언뜻 들으면 겸허한 반성 같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경우의 약 70% 이상은 '내가 뭘 잘못했는지' 정확히 모르거나, '그냥 사과는 해야 하니까' 사과하는 경우이다.
내가 요거, 요거, 요거를 잘못했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기가 자존심 상하거나, 귀찮거나, 현 상황에 심정적으로는 동의를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마누라가 바가지를 엄청 긁어서 궁지에 몰린 남편이나, 자기애가 무지 강한 기업 총수가 상황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할 때 '무조건 모두 내 잘못이야.' 라는 표현을 쓰게 된다.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다면 상대가 힘들었을 부분을 역지사지해보고, 나의 이런이런 행동으로 네가 이러이러하게 힘들었겠고, 그 점에 대해 미안하다고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사과해야 한다.
[모범사과] "내가 너와의 약속은 안 지키고 친구들과의 약속만 중요하게 생각해서 네가 굉장히 서운했겠구나. 그리고 내가 피곤하다는 핑계로 너와 약속한 가사 분담을 잘 안 해서 네가 화가 난 것 같다. 미안하다."
3. 남의 탓을 하지 말라.
"사실 예전 여자친구가 날 너무 피곤하게 했어서, 네가 조금만 잔소리를 해도 내가 예민해져서 화를 크게 내게 되는 것 같아. 미안해...."
이거 정말 나쁘다. 나는 지금 상대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사과를 하는 중이다.
즉, 사과란 상대와 나 사이의 이야기이다. 정황을 따지고 상황을 논하는 것은 사과가 끝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여기에 제3자나 제3의 상황을 개입시키지 말라. 역시 구차한 변명으로 보이며 사과하는 진심마저 의심당할 수 있다.
[모범사과] "미안해. 네가 잔소리를 좀 했다고 내가 그렇게 소리까지 지르고 화를 낸 건 과도한 반응이었어."
4. '나도 힘들다'는 말은 도움이 안 된다.
"니가 속상해서 갔을 때, 나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리고 요새 나도 직장에서 상황이 너무 힘들단 말이야. 그래서 그랬어..."
이건 사과가 아니다. 나도 힘들었으니까 됐다는 건가? 이럴 때 상대는 "So what? (그래서?)" 란 말이 입에서 뱅뱅 돌 것이다. 상대를 때려놓고, 나도 괴로워했으니까 서로 쌤쌤인 걸까? 일단 사과를 하기로 했으면, 먼저 나로 인해 갖게 된 [상대의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나도 힘들어~' 란 이야기는, 사과가 끝난 후에 좋은 분위기에서 얼마든지 귀엽게 투정부리며 할 수 있다.
5. 상대의 마음을 달랠 보상책을 내놓는다.
이게 무슨 교통사고 합의냐? 보상을 하고 말고 하게...,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연인 사이라도, 잘못을 했으면 어떤 식으로건 대가를 치르거나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정말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말로만 미안한' 것이 아니라면, 나의 잘못으로 상처 입은 상대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뭔가를 주어야 한다. 그게 마음이든, 어떤 행동이든, 물질이든, 적절한 수위의 보상은 사과의 핵심이다.
물론, 어떤 보상을 한다고 해도 사과하는 사람의 잘못이 무마되거나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과를 받는 사람은 이 사과가 '말로만 미안한 것이 아님'을 느끼고 실제 이득을 통해 마음을 풀 수 있고, 사과를 하는 사람은 '잘못을 하면 비용과 수고가 따른다'는 것을 몸으로 익힘으로써 같은 일의 재발을 줄일 수 있다.
[모범사과] "여보, 그동안 내가 회사 다니는 당신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이번에 이렇게 내 실수로 시댁과 관계로 틀어지게 되어 미안해. 당신에게 내 미안함을 전하기 위해서, 이번에 내가 절약한 용돈으로 시부모님 모시고 외식이라도 하려고 해요."
6. 재발 방지를 위한 계획을 제시한다.
"다음부턴 절대 안 그럴께. 내가 다음에 또 이러면 사람의 자식이 아니야."
무조건 '믿어달라'는 말은 처음 몇 번만 통한다. 만약 사과하는 사람이 큰 잘못을 한 경우라면, 앞으로 다시 이런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한 명백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절대 안 하겠다'고 결의를 하는 것은 큰 도움이 안 된다. 이미 신뢰가 흔들린 상태에서 자신을 무조건 믿어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부탁인 것이다.
이럴 때는 재발을 하지 않기 위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규칙이나, 재발 시의 벌칙을 스스로 설정하여, 사과 받는 사람이 신뢰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범사과] "여보, 앞으로 내가 술을 줄이기 위해서 회식은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제한할께. 그리고 만약 그 이상 과음을 하게 될 때는 내 용돈의 반을 당신에게 반납할께. 열심히 할테니 믿어줬으면 해."
7. 이 모든 과정을 진심을 담아서 진지한 태도로 행한다.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제일 중요한 일이다. '나 죽었소~' 라고 눈 딱 감고 납짝 엎드리는 것이 진정한 사과는 아니다. '좋은' 사과에는 다친 상대의 마음에 대한 이해와 위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진솔한 반성, 앞으로의 관계 호전을 위한 고민이 녹아 있어야 한다. 이런 진심 어린 반성에는 의외로 누구나 마음이 풀리게 되고 심지어 감동하게 된다. 사과를 정말 '잘' 한다면, 오히려 사과 이전보다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는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이분의 사과는 7가지 [사과의 기술] 중 몇 가지나 담고 있을까.
사실 사과를 '잘' 했는지 측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과 받은 사람의 기분을 물어보는 것이다. 사과를 받은 당사자가 마음이 많이 풀리고, 사과를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면 그것은 비교적 잘한 사과라고 할 수 있다.
임기 3개월도 안 되어 머리를 3번 씩이나 조아린 대통령의 사과를 들은, 국민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마음이 좀 풀어지고, 다시 잘 지내야 겠다는 말들이 안 나오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번 대통령의 사과는 '타산지석'보다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잘못은 할 수도 있다. 이에 대처하고 사과하는 자세가 중요할 뿐이다.
비록 기술이 조금 부족해도, 진심이 담긴 사과를 듣고 싶은 것은, 그저 우리들의 꿈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