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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남편 생일에 시어머니께 감사 전화 드렸더니

최창호 2013. 7. 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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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아내의 생일에 꼭 장모님께 전화를 드린다.  

"어머니, ○○이 엄마 제게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 잘하고 살겠습니다."

참 고맙다. 설령 인사치레성 멘트일지라도 그렇게 말해준다는 게 어디 쉬운가. 친정엄마는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하는 사위의 이 말을 진심으로 알아 들으시고 무척 기뻐하신다.

 

나 역시 남편처럼 어머니께 단 한 번이라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그동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요즘들어 부쩍 쇠약해지신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더 늦기 전에 당신이 아들 낳으신

한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시게끔 남편의 생일이 오면 꼭 인사 드려야지 결심했었다.

 

엊그제, 드디어 그날이 왔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출근준비를 하는 사람이라 전 날

미역국을 끓이고 몇몇 가지 음식을 장만해 놨다가 간단히 생일상을 차렸다. 저녁 스케줄이 불분명한데 혹

시라도 생일에 미역국 한 그릇 먹을 만한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

바쁜 일상 중에 음식을 준비한 아내에게 매우 고마워하며 생일상을 기쁘게 받았다.

 

남편을 출근시킨 다음 일찌감치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요즘 두 분 다 자꾸만 편찮으셔서 입퇴원을

반복하고 계시는데 그 날은 먼 길을 행차하는 중이라고 하셨다.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 채 자꾸만 병원

들락거리는 게 답답해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을 냈더니 용한 침술사를 소개해주더란다. 그곳에 가면

확한 병명을 알아낼 수 있고 치료도 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두 분이서 집을 나선 모양이다. 아버님과

사를 나눈 뒤 어머니를 바꿔 달라고 하여 통화를 했다.

 

"어머니, 오늘 ○○아빠 생일이예요. 어머니도 알고 계셨어요?"

피식 웃던 어머니가 당당하게 대답을 하신다.

"응. 알고 있었지."

당신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드신 분이 남편 병수발을 하느라 호되게 몸살을 앓으신 끝이라 무슨 정신이 있

을까 싶어 여쭈었는데 다 알고 계셨단다. 나는 그동안 마음에 담아 둔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 ○○아빠 낳아 훌륭하게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말했는데 그만 목이 콱 막힌다. 일 구더기 속에 살면서 시어머니 봉양하고 시동생들, 일꾼들까

지 십 수명 수발하며 살림을 사느라 산후조린들 제대로 했겠는가.누가 미역국이나 제대로 챙겨 줬을까

싶다. 목이 메는 건 시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말씀을 잇지 못하신다. 그러더니 울먹거리며 이렇

게 응답하셨다.

"○○가 너를 얼마나 고생시켰는데 그래도 고맙다고 해주니 눈물이 난다. 아가, 고맙다."

 

결혼한 지 28년, 아직까지 시어머니와 한 번도 마음 상해 본 적이 없다. 시어머니는 고생하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애면글면 하시고 난 일생 편편히 살지 못하시는 시어머니가 가엾어 가슴이 아프다. 그러다 보

니 서로를 미워하거나 원망할 새가 없었다. 어머니는 느닷없는 며느리의 인사에 황망하셨던가 보다. 나

는 며느리를 더 호강시켜주지 못해 늘 미안해하시는 어머니가 이젠 제발 며느리에 대한 부채감에서 자유

로워지시기를 바랐다. 또한 그날 하루만이라도 기쁘고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간단한 인사 한 번 못드리고 살았던 걸까. 어머니는 내년에도 내게 그런

인사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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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내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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